스포없는 디즈니 영화 알라딘 현실판 후기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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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스포없는 디즈니 영화 알라딘 현실판 후기 감상문

by 써너리 2019. 6. 27.

영화 알라딘을 보고 남기는 감상평

나는 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국민학교로 불리던 때에 입학해 김영삼 대통령 정권 때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고 몇 년 후 졸업을 했다. 그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볼 것인가, 자전거를 타고 교회를 가 친구들과 놀 것인가. 내게 가장 큰 난제였다. 어느 날은 만화동산을 택하고 또 어느 날은 교회를 택하며 들쑥날쑥한 선택지를 써갔다. 나는 작은 시골에 살았는데, 매주 일요일 교회만 가면 동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게 교회는 종교적인 의미보다, 하나님의 존재보다 친구들의 존재에 더 의존하고 믿었던 것 같다. 일요일 오전 9시면 친구들이 그곳에 있을 거라는 믿음. 

교회에 가면, 성경책을 서로 읽으려고 손을 들었고 찬송가를 따라 불렀고, 모든 예배가 끝나면 헌금을 내는 데 매주 출석과 헌금을 내면 월말에 선물을 주셨다. 그래서 더더욱 만화동산과 교회를 두고 그 어린 친구가 큰 고민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아빠에게 100원 받아 교회로 갈 때면 구멍가게에서 새콤달콤을 사 먹을지 헌금을 낼지도 고민이었다. 어느 날은 500원을 주셔서 새콤달콤을 사고 헌금도 낼 수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표면적으로는 불교였는데, (다니던 절은 없었다.) 초등학생인 내겐 종교적 자유가 있었던 것 같다. 한번도 내게 왜 교회를 가느냐고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아침에 헌금까지 주시던 것 보면 더더욱 종교적 선택의 자유를 주신 것 같다. 

일요일이면 늦잠도 잘 법한데 디즈니가 나오는 시간에 칼 같이 일어나 티브이를 차지 하고 앉았다. 그만큼 디즈니 만화동산은 내 초등학교 시절 큰 즐거움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늘 더 보고 싶어 안달이 나던 만화영화들도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서 시들어졌다. 성인이 된 뒤로는 더더욱 만화를 보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가끔 디즈니 영화가 개봉하면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만화동산 참 좋아했는데'... 정도로.

 

참 희한하게도 더 어른이 되고 나서는 폭력적이고, 판타지적이며, 현실적인 영화들을 자주 보게 되고, 궁중 심리로 '어떤 영화가 몇 백만을 넘었다더라' 하면 나도 봐야 할 것 같아 영화관으로 발길을 들였다가 이내 후회가 되던 영화들이 늘어 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인가 정화되고 맑고 깨끗한 내용을 담은 잔잔한 영화들을 보고 싶어 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10여 년을 만화는 유치하다고 편협하게 생각했던 내 선호도도 나이가 조금 더 들면서 변하게 됐다. 아니면, 성숙해져 버린 내게 동심을 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은, 보고 나서 찜찜한 영화는 기피하고 싶어 지고, 어릴 적 보았던 그 어떤 것들을 찾는 일도 잦아졌다. 

영화 알라딘이 그렇다. 그래서 더 큰 의미를 느끼고 싶었다. 영화관에 사람이 별로 없고, 더더욱 어린 친구들이 없을 조용한 시간에 보고 싶어 심야 영화로 보게 됐다. 아라비안 나이트~ 멜로디가 시작할 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지니와 조금 더 인연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드림위즈 지니라는 메신저가 유행했다. 버디버디와 지니, 네이트 등의 메신저들이 있었지만 내 친구 무리들은 지니를 많이 이용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해 처음 좋아하게 된 친구를 지니를 통해 친해지게 되었다. 같은 학과 동기였고 물어 물어 지니 아이디를 알게 돼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못 붙였던 친구와 하루 종일 지니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학교에서 만나 데이트를 즐기다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달콤한 20살 첫사랑이 바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지니를 통해 시작됐었다. 영화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지니라는 두 글자가 첫사랑까지 상기시켜주는 거 보면 과거의 경험들이 현재에 미치는 기억까지 연관이 되니  참 신기할 뿐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왜인지 기분이 몽롱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나도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있는 것처럼 왜 이리 기분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은지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미소를 머금고 영화를 보다 금세 슬퍼져 뭉클해지기도 했다. 어릴 때 보던 디즈니 영화들은 그냥 재미로 봤다면 성인이 된 지금은 왜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이 가슴을 콕콕 찌르며 인생을 논하게 되는지..

'가진 게 없을수록 가진 것처럼 행동해야 돼'

나는 특히나 이 대사가  좋았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잊어버리지 않으려 몇 번이고 되뇌었는데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조사 정도는 다를 수 있어도 대략 저런 대사였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없어 더 와 닿나? 모르겠다. 비루하지만 비루하지 않은 척하고 사는 요즘이라 가슴 깊이 새겨졌나 싶다.

노래들이 흥얼흥얼 입가에 맴돌고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은 또 왜 이리 멍해지는 건지.. 영화를 보는 건지, 추억을 회상하는 건지 한참.. 빠져 버렸다. 모든 기억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영상미도 배우들의 분장도 모든 것이 만화 영화 같았다. 현실판의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영화 자체에 몰입하고 빠져 버렸다. 그 덕에 내내 잔잔하게 마음이 행복해졌다. 

 왜 사람들이 두 번 세 번 이 영화를 보는지 백번 이백 번 이해한다. 

알라딘은 그냥 영화만이 아니다. 영상미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만이 아니다. 나 같은 누군가에게는 추억이며, 잊고 산 삶의 일부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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